2021년~2022년 겨울 시즌은 탄소 중립을 선도하고 있는 유럽에게 언젠가는 짚고 넘어가야 할 몇몇 문제들이 권역 전반에 걸쳐 표면화되고 있는 시기인 것으로 보인다. 급격한 탈탄소 및 발전원 전환이 풍속 저하라는 기후 변수로 시험대에 오르고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으로 지정학적 리스크에 따른 에너지 역학 관계 역시 재조명 받고 있다.
유럽 전체 발전원 용량 중 풍력 비중이 20%에 육박하기 때문에 풍속 저하에 따른 풍력 이용률 및 발전량 감소는 곧바로 부하 추종 자산으로써 가스 발전 수요 증가로 이어졌다. 여기에 지난해 4분기부터 점진적으로 나타난 러시아산 가스 수입 감소와 네덜란드 등 역내 주요 천연가스 생산국에서의 생산 감소가 맞물렸다. 독일과 프랑스는 석탄, 영국은 가스 등을 서둘러 확보하기 시작했다.
가스 가격에 대한 민감도가 높아지고 있는 상황에서 지난 2월 말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은 공급 측면의 리스크를 증폭시켰다. 이에 대해 EU(유럽연합) 등 유럽 전체 차원에서는 러시아산 가스 의존도 감축 의지를 표명하고 그 과정에서 재생에너지의 간헐성으로 초래될 수 있는 수급 불안을 보완할 수 있는 안정적 발전원 확보 방안에 대해 적극적으로 재검토하고 있다.
수급 측면의 변동성이 확대되고 있는 가운데 1월 유럽 Top 6개국 가스 수요는 42.8Bcm로 겨울 난방 수요 증가에 따라 전월대비 4% 증가했다. 반면 전년 대비로는 7% 감소했는데 평년대비 온화한 겨울 날씨로 주거 및 상업용 가스 수요가 감소(-8%)한 동시에 최근 에너지 가격 급등으로 산업용 수요가 위축된 탓이다.
국가별로 살펴보면 지난해 1월 연간 변화율이 큰 폭으로 개선됐던 영국, 독일, 네덜란드 등 국가의 전체 가스 수요가 올해 1월에는 전년대비 각각 11%, 12%, 18% 감소했다. 특히 영국, 독일의 산업용 가스 수요 전년대비 변화율이 각각 – 50%, -45%를 기록하며 큰 폭의 감소세를 기록했다.
러시아, 유럽 가스 공급 환경 변화 초래
유럽 가스 공급 측면에 있어 가장 큰 변수는 지난 2월말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이며 러시아-유럽 간 가스 파이프라인을 통한 천연가스 유입 감소분을 LNG 수입 물량이 대체하고 있는 중이다. 1월 유럽향 파이프라인 가스 공급량은 전년대비 23% 감소한 반면 LNG 순수입량은 175% 증가했다.
사실 유럽은 지난해 4분기부터 러시아산 가스 수입량을 감소시켜왔는데 기존 파이프라인을 통한 수송 계약 만료와 공급 계약에 따른 유럽의 러시아 가스 수송량 할당(nomination) 축소 등이 진행됐기 때문이다. 유럽(터키 포함)향 러시아 파이프라인 가스 공급은 지난해 9월부터 2014~2021년 평균인 15Bcm 내외 수준을 하회하기 시작해 올해 1월에는 전년대비 38% 감소한 10.7Bcm로 사상 최저 수준을 기록했다. 유럽향 러시아산 가스 공급 중 20%의 비중을 차지하는 Yamal-Europe 파이프라인(러시아-폴란드-독일 연결)의 경우 일간 유입량이 5MMcm/d를 꾸준히 하회하더니 2022년부터는 0을 기록하고 있다.
대륙 간 파이프라인 가스 공급 부족분은 LNG 수입 물량으로 채워지고 있다. 지난 1월 유럽의 LNG 순수입량은 16.1Bcm으로 전월대비 36%, 전년대비 175% 급증했다. 이는 2013년 이후 평균 수준인 6Bcm의 3배에 육박하는 수치이며 10년래 사상 최고치다.
국가별로 보면 프랑스의 경우 지난 1월 기준으로 러시아산 가스 공급 감소폭이 컸던 만큼(전년대비 -84%) LNG 수입 증가폭이 가장 두드러졌다(+362%). 독일은 지난해 9월부터 러시아 가스 유입 규모를 줄이기 시작해 4분기까지(가장 최근 데이터 기준) 네덜란드 생산량으로 충당하고 있는 상황이었다. 다만 네덜란드의 경우 1월부터 자체 생산량이 전년대비 28% 감소해 향후 유럽의 LNG 수입 수요는 지속적으로 증가할 전망이다.
유럽은 글로벌 LNG 시장에서 여유 물량을 담당하는 권역으로 간주돼왔기 때문에 통상적으로 유럽의 LNG 수입 증가는 그만큼 글로벌 LNG 시장 수급이 타이트하지 않음을 의미하는 것이기도 했다. 다만 지난해 4분기부터 유럽 가스 가격이 급등하는 가운데 아시아 지역 수요가 평년대비 완만하게 증가하는 시황이 맞물리면서 기존의 트렌드를 변화시켰다.
아시아 LNG 현물 가격은 일반적으로 유럽 LNG 가격 대비 프리미엄이 형성돼 상대적으로 높은 가격으로 거래된다. 최근 유럽 에너지 가격 급등으로 시장 간 차익 거래(interbasin price arbitrage) 메커니즘이 작동하지 않으면서 LNG 판매자 입장에서 아시아 시장향 수출 인센티브가 감소했다. 아시아-유럽 LNG 가격 프리미엄 축소는 LNG spot 혹은 인도 조건이 유연한 계약 물량의 공급을 유럽으로 향하게 하는 동인이며 유럽의 LNG 수입 확대가 가능했던 이유이기도 하다.
다만 글로벌 LNG 시장에서 유럽의 비중을 보면 영국을 포함해도 20% 내외이기 때문에 유럽과 아시아 간 가스 공급 물량이 평년대비 강하게 연동된 상황은 LNG 수급 변동성을 확대시킬 수 있다. 두 권역에서 발생할 수 있는 리스크가 큰 파급 효과를 낳을 수 있다는 측면에서 유럽 가스 시장 동향에 대한 꾸준한 모니터링이 필요한 시점이라고 판단한다.
유럽 내 교역 측면에서는 영국과 독일의 가스 공급을 주목할 필요가 있다. 통상적으로 여름 시즌이 되면 영국의 유럽 대륙향 순수출이 증가하고 독일의 오스트리아향 가스 수출이 늘어난다. 최근 타이트한 수급 상황에서 일찍부터 오스트리아향 수출 물량이 늘어나고 있으며 네덜란드 자체 생산량 감소로 네덜란드향 수출 물량 역시 전년대비 2배 이상 증가했다.
영국의 경우 지난해 여름 시즌 뿐 아니라 4분기까지도 지속적으로 대륙향 순수출을 이어오고 있으며 올해 1월에는 LNG send-out(재기화 및 송출)이 전년대비 372% 증가하는 동시에 자국 내 생산 역시 24% 증가했다. 영국 내 산업 수요가 급감(-50%)한 탓에 자국 내 소비 물량이 감소하고 미국 등으로부터 발빠르게 LNG 물량을 확보해 재고를 확충하고 있기 때문에 당장의 수급 충격 가능성은 크지 않다. 다만 이와 같은 상황이 장기화될 경우를 대비해 영국 외 유럽 국가의 지속적인 가스 재고 수준 회복 여부 및 영국, 독일 재기화 터미널 인프라와 미국 액화 터미널 인프라 용량 확충 및 이용률에 대한 확인이 필요하다.